건축과 도시, 인간에 대한 생각.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유현준 건축가
유현준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의 교수이자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이다. 연세대학교에서 학사를, MIT에서 건축설계 석사(M.ARCH)를 마쳤으며, 하버드대학교 건축설계 석사 우등졸업(M.ARCH WITH DISTINCTION)을 하였다. 이후 리처드마이어사무소에서 실무 경력을 쌓았다. CHICAGO ATHENAEUM ARCHITECTURE AWARD, GERMAN DESIGN AWARD 등 20여 차례 국내외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모더니즘 동서양 문화의 하이브리드>등의 저서가 있다.
The Void ⓒ Youngchae Park
Q.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A. 유현준건축사사무소는 2007년 문을 열어 올해로 13년 차를 맞이한 작은 아뜰리에 사무실이다. 15명 정도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으며, 주거 공간, 상업 공간 가리지 않고 여러 건축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공건축물 현상 설계 몇 개가 당선되어 공공 건축도 많이 하고 있다.
Q. 로버트 벤투리, 프랭크 게리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제3세대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어떤 것을 배웠나?
A.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웠는지 묻는다면 설명하기가 어렵다. 물론 건축적인 부분에서는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디테일이라던가, 재료의 활용에 대한 것도 있지만, 책으로는 배우지 못하는 다른 부분의 것들을 더 많이 보고 배운 것 같다. 그분이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방식, 부하 직원을 대하는 방식,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대하는 태도처럼 말이다.
처음 리처드 마이어를 만났을 때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최연소 수상한 그에게서는 어떤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를 포함해서 같이 일하던 친구들도 비슷한 것을 느낀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의 밑에서 함께 일하는 건축가들도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역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The Void ⓒYoungchae Park
Q. 건축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A. 기본적으로 건축은 사람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의 관계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과 공간의 관계 등을 말한다. 그런 관계들을 컨트롤하고 디자인하는 것이 건축설계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설계를 할 때에도 ‘내가 만든 공간에 사람이 들어갔을 때 어떤 관계가 형성될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고, 창문, 문, 벽, 천장, 지붕, 바닥 등의 요소를 통해 공간을 만들어서 세심하게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보고 있다.
Q. ‘인문 건축가’라고도 불리고 있다.
A. 처음 ‘인문 건축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닭살이 돋고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웃음) 사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건축가는 인문 건축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문이 사람에 대한 학문이라고 정의한다면, 건축만큼 인문학적인 학문은 없는 것 같다. 건축설계는 벽, 바닥, 천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벽과 바닥과 천장이 만드는 공간을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건축물을 짓는 것이다. 때문에 근본적으로 모든 건축 디자인의 최종적인 목표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Mug Hakdong ⓒYoungchae Park, Juneyoung Lim
Q. 공공 건축 중에서도 교육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A. 사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조금 부족한 성향이 있는것 같다. 여기에는 학교 건축이 큰 역할을 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학교의 모습은 흡사 교도소 같기도, 혹은 군부대 막사 같기도 하다. 이는 학생들이 집단으로 움직이게 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의사결정에서 나온 건축 디자인이다. 이런 교육 공간에서 12년을 생활하는 아이들은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건축가로서 하드웨어적으로 이런 부분을 해결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나는 모든 학교가, 학급이 서로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학년 때는 마당에 연못이 있는 교실에서, 2학년이 되면 삼각형 모양의 교실에서, 전학을 가면 또 다른 모습의 학교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독창적이고, 서로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어른이 될 것이다.
Kangaroo House ⓒYoungchae Park
WIND FENCE ⓒ Kyongsub Shin, Youngchae Park
Q. 주거공간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한다는 요즘의 추세에 대해 유현준 교수의 생각이 궁금하다.
A. 개인적으로는 셰어하우스나 청년임대주택이 주목받는 것이 썩 달갑지는 않다. 특히 기업 차원의 대규모 셰어링 하우스는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자본가들만 지주가 되거나, 청년임대주택은 정부가 지주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 사회 초년생이 월세를 전전하다가 언젠가는 집을 살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청년들 대부분이 세입자로 살거나 자가를 소유하지 못하는 세대주들이 늘어나는 등의 부동산 문제는 중산층이 내려앉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셰어링 하우스나 청년임대주택처럼 세입자가 늘어나는 것보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만의 집 한 채는 소유할 수 있는 사회가 건전하고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세종산성교회 ⓒKyongsub Shin, Youngchae Park
Q. 집이 없어서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1-2인 가구도 급증하고 있다.
A.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공급률은 1,700만 채 정도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인구가 5천만 이상으로 증가하지 않고,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집을 더 지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는 오류가 있다. 5천만 인구를 4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에는 대략 1,250만 채의 주택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택이 충분히 공급됐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가구가 쪼개져서 더욱 많은 주택이 필요해졌다. 4인가구만을 기준으로 주택공급률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1-2인가구 등 다양해진 세대 구성을 모두 고려해 주택공급률을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투기목적으로 한 사람이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방지할 필요도 있지만, 1-2인 가구를 위한 더 작은 규모의 주택도 더욱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JJJ ⓒKyongsub Shin, Youngchae Park
Q. 1-2인 가구를 위한 더 작은 규모의 주택이란?
A. 우리는 80년대에 4인 가구를 기준으로 25-30평 규모의 집을 대량으로 시장에 공급했다. 이 시기는 세대 구성이 핵가족으로 변화하면서, 부부가 방 하나, 두 자녀가 각자의 방을 쓰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25-30평에 방 3개짜리의 집이 중산층의 표본이 된 것이다. 1-2인 가구가 60%를 초과하는 지금은 15평 규모에 3평 정도 되는 발코니가 있는 집이 새로운 중산층의 표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하루 중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때보다 1.5배 증가했다. 요즘에는 집에서 업무도 보고, 취미생활도 즐긴다. 또, 소유하는 물건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스타일러, 건조기처럼 새로운 가전제품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때문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벽식 구조보다는 기둥식 구조로 설계해서 집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2인 가구가 자녀를 낳으면 필요에 따라 우리 집을 옆집까지 확장도 하고, 방을 구성하는 등 공간을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Q. 유현준 건축가가 바라보는 건축, 도시의 미래는?
A. 우리는 지금 건축과 도시,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변화할 수 있는 기점에 서 있다.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유례없는 전염병의 유행은 온라인 강의, 재택근무 등의 형태를 통해 이제는 우리의 학교, 주거 공간, 업무 공간이 새롭게 바뀔 수도 있다는 인식을 일깨워줬다. 또한, 언택트 소비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앞으로는 서울 시내 연면적의 30%를 차지하는 상업 공간에 대한 수요가 줄고 점점 빈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이 비어있는 공간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새로운 형태의 교육 공간, 혹은 1-2인 가구를 위한 새로운 주거 등이 프로토타입으로 제시될 수도 있겠다. 지금을 기점으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시정책이 바뀌고 건축가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면,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는 건축이 달라지고 도시 구조가 바뀌면서, 그 과정을 통해 경제 활성화가 되는 등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다. 지금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최적의 시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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